[책소개] 베니스의 개성상인, 오디오북과 새로운 구성으로 다시 태어난 스테디셀러
최근 구성을 새롭게 해서 독자를 찾아온 베니스의 개성상인을 소개드리겠습니다.
만약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의 책 제목을 들으면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과 관련이 있는 책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텐데요. 사실 어느 정도 (정말 조금) 관련이 있긴 합니다.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했던 악역 샤일록이 유대인인데, '베니스의 개성상인'에도 유대인 자본의 힘과 차가움을 느낄 수 있거든요.
하지만 소설 제목도 비슷하고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장소가 물의 도시 베니스라는 점도 비슷하지만 그 외에는 크게 비슷한 점을 찾기 힘든 소설입니다.
사실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은 대한민국 출판 역사상 전무후무할 수도 있는 출판계의 르네상스 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소설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의 초판이 발매된 시점이 1993년인데요, 1993년도는 어떻게 보면 다시 오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책들이 등장했던 시기입니다. 아이돌로 치면 뉴진스, 블랙핑크, 에스파, 아이브, 르세라핌, 스테이시, 있지 등 4세대 아이돌이 박빙인 요즘과 닮은 것 같습니다.
이때 발간된 책 몇 개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993년도에 발간되었던 서적들의 라인업을 보면 정말 화려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다.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출세작 개미, 팩션의 대가 김진명 작가의 출세작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국형 오컬트 소설의 시작을 알린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 등 한 번 책을 펴면 손에서 책을 떼기 어려운 재미를 갖은 책들이 한가득 있습니다.
이문열 삼국지연의 (1988) : 민음사, 이문열 평역
은하영웅전설 (1990) : 을지서적, 다나카 요시키
퇴마록 (1993) : 들녘, 이우혁
개미 (1993) : 열린책들, 베르나르 베르베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1993) : 해냄 출판사, 김진명
터 (1993) : 도서출판 답게, 손석우
베니스의 개성상인 (1993) : 장원출판사, 오세영
※ 참고 1 : 이문열 삼국지연의, 은하영웅전설은 초판 발간 연도는 1993년도 발간된 서적보다 몇 년 일찍 발간되었으나 1993년도 출판업계의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스테디셀러로 더 큰 인기를 얻게 됨
※ 참고 2 : 을지서적판 은하영웅전설은 정식 판권을 맺지 않은 작품이라서 해적판임
그 와중에 궤를 같이한 소설이 있었으니 바로... 베니스의 개성상인입니다. 이 책은 무려 300만 부나 판매되었을 정도로 당시 엄청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책입니다.
300만 부가 어느 정도 되는 판매량인지 감이 잘 안 올 수도 있는데요, 2022년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불편한 편의점(김호연)의 판매량이 약 100부니까 300만 부의 위력이 대충 감이 오지 않을까요? (김호연 작가님을 강연 때 뵈었는데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생각이 깊은 분이었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이번에는 책의 내용을 조금 더 슬림하게 하고, 오디오북으로 새 단장을 해서 독자를 찾아왔습니다. 기존에 있는 책은 총 3권 정도 분량이었고, 17세기 초의 조선인 안토니오 코레아와 현대시대를 사는 상사맨의 이야기를 교차 편집해서 보여주는 방식이었는데요. 이번에는 현대 시대를 사는 상사맨의 이야기는 덜어내고 17세기 초의 안토니오 코레아의 내용만 담아서 호흡을 조금 더 짧게 해서 소설의 긴박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디오북도 꽤 재미있습니다. 효과음도 적재적소에 잘 들어가 있고요, 한 성우께서 청소년기에서부터 노년의 안토니오 코레아의 목소리를 다 소화해 내는 것을 보고 어찌나 소오름이 돋던지... 성우분들의 내공은 어디까지인가 싶더라고요.
참고로 이 책이 워낙 재미있다 보니 총 4개의 출판사를 거치면서 신간을 펴내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분량이 꽤 돼서 3권으로 발매되었고요, 이후 2권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베니스의 개성상인 (1993) : 장원출판사, 총 3권
베니스의 개성상인 (2002) : 동방미디어, 총 3권
베니스의 개성상인 (2008) : 예담, 총 2권
베니스의 개성상인 (2023) : 문예춘추사, 총 2권
책 조인공은 안토니오 코레아라고 개명한 조선인이자 개성상인(송상)의 아들 유승업입니다. 이 책 도입부에서 주인공은 임진왜란(1592~1598년) 당시 권율 장군의 실책으로 칠천량해전(1597년)에서 왜인들의 포로가 돼서 일본에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포로생활을 하다가 귀인의 도움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이탈리아 반도의 베니스 지역으로 가서 활약을 펼치게 됩니다.
역시 소설 주인공이라서 그런지 위기가 닥쳐도 기회로 여기고 상업 관련 실무도 익히고 외국어도 익히면서 레벨업을 합니다.(조선 시대에도 외국어라니...) 이렇게 익히게 된 언어에는 일본어, 이탈리아어, 영어, 라틴어가 있고, 당시 시민법도 줄줄 꿰고 있습니다. 물론 머리가 좋은 것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면서 이국땅에서도 난관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책 소개를 보면 팩션(Fact + Fiction 실제 역사에 실제인물과 가상인물을 잘 버무려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장르)이라고 쓰여있는데 실제로 오세영 작가가 사학과 출신이라 그런지 탄탄한 역사의 흐름에 주인공과 주변인물, 그리고 그들이 울고 웃으며 함께하는 직장 델로치 상사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버무립니다.
주인공이 유럽으로 건너갔던 시기 전후에 아래와 같이 유럽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는데요(기억나는 대로 써서 연도는 좀 틀릴 수 있습니다), 이 사건들을 배경으로 주인공의 직장 델로치 상사가 어떻게 난세를 헤쳐나가는지를 보는 재미도 있고, 역사 전공자인 작가가 부연설명하는 당시의 정황 등을 보면서 역사를 배우는 재미도 있습니다.
중동에는 오스만 튀르크(1299-1922)의 힘이 점차 강해짐 : 페르시아와 전쟁 중
무적함대 스페인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영국에 패배 (1588) : 커가는 영국 상인과 베니스 상인의 대립 발생
신대륙 발견(1492) 이후, 무역 중심지 이동 : 지중해 무역이 쇠퇴하는 중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장 : 2권에서 주인공을 도움
60년 전쟁 진행 중 (1568-1648) : 신구교의 갈등으로 스페인과 네덜란드 간의 전쟁 발발
30년 전쟁 발발 (1618-1648) : 신교 진영과 구교 진영의 대립으로 각 상사들은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됨
그리고 상사맨으로써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처세술을 배우는 것도 덤입니다. 이 책을 보면 왠지 예전에 방영했던 인기 드라마 '미생'이 생각나는데요, 신입 장그레가 겪는 여러 가지 상황이 왠지 주인공 안토니오 코레아랑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하지만 미생과 베니스의 개성상인의 결말은 꽤 다릅니다.
결말이 궁금하시다면 베니스의 개성상인을 한 번 접해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